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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제약의 다양한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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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소
유영제약 창업주
생년월일
/ 본적
1942년 4월 23일
충청북도 진천군 만승면 광혜원리 301번지
학력 및
주요경력
1958년 02월
경기중학교 졸업
1961년 02월
경기 고등학교 졸업
1964년 02월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81년 12월
(주)한중제약 인수 및 (주)유영제약 설립
1990년 10월
유영 장학회 설립
2005년 05월~
2007년 05월
경기 고등학교 57회 동문회장 역임
2005년 08년
세브란스 국민건강 마라톤 2005 자문위원 위촉
상훈 및
지역감사장
1988년 10월
부천상공회의소 감사장
1989년 05월
서울 특별시 경찰국 감사장
2001년 04월
충북 진천군 감사장
2003년 03월
제 37회 납세자의 날 석탑산업훈장
2004년 12월
충북 진천군 감사장
2005년 05월
우수중소기업인 대통령 표장
청년 실업가로서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정진하시던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은 1969년 평생의 반려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이신 이상원 여사님과 평생을 약속하시고 슬하에 1남 1녀를 두셨습니다.
당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장과 이익에 급급하여 제약산업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은 제약산업이야말로 청년 시절 꿈꾸시던 인류와 고객, 직원 모두에게 최고의 가치를 주는 기업의 설립과 성장의 토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긴 준비 끝에 1981년 김포에 (주)유영제약을 설립하시어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설립 후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은 1990년 당신의 고향인 충청북도 진천에 KGMP신축 공장을 설립하시어 (주)유영제약 발전의 초석을 다지셨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흔들리고 도산할 때, 수년 전부터 외환위기의 위협을 예측하고 준비하시었던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선견지명과 유영인 모두의 노력으로 (주)유영제약은 위기를 넘어 또 한 단계의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정도(程度)만을 고집하셨던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인생 철학은 경영방침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2003년 모범납세자의 날에 제약회사 중에서는 몇 손가락에 꼽는 석탄산업훈장을, 2005년도에는 모범중소기업으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은 이러한 하나하나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변화와 창조, 미래를 향한 개척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굳건한 경영 의지 아래 2006년 (주)유영제약은 기존의 모습에서 과감히 탈피한 CI를 새롭게 선포하여 제2의 도약을 준비하게 되었고, 2007년 세계로 나가는 유영이 되기 위하여 EU-GMP 개념을 도입한 진천 신공장을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유영소(柳英昭) 회장님께서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주)유영제약의 꾸준한 발전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유영소 회장님께서 본인의 영달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만 힘쓰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선친께서 계시는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으며, 청소년이 나라의 힘이고 인재가 유영의 재산이라는 평생의 믿을을 지키시어 장학사업 등 수많은 사회 환원사업에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어떠한 이득이 있어도 옳지 않은 길을 바라보지 않고 정도(程度)를 지켜오신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삶, 그 삶속에서 미래를 향한 개척정신과 정도를 지키는 의지는 끝까지 빛 날것 이며, 인간을 향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배려, 직원들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관심의 따뜻한 향기는 넘쳐날 것입니다.
여기에 일일히 열거할 수 없는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많은 업적과 깊은 뜻은 후세에 귀감이 될 것이며, (주)유영제약의 모든 유영인은 유영소(柳英昭) 회장님의 정도 경영이념을 받들어 그 굳건한 의지와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뜻을 모아 함께 노력 할 것입니다.
광혜원 중고등학교 "설립공로자 송덕비"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6.25 전쟁으로 자녀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을 때, 선견지명의 지식인 박광국 교장이 사재를 털어 1950년 4월 월성리에 금상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가 현재의 광혜원 중고등학교의 모태이다.
1963년 고 유영소 회장의 선친이신 유원호 병원장은 몇몇 지인들과 월성리 금상학교 인수 문제와 중고등학교 설립 문제를 논의하였다.
당시 한국전쟁 중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유원호 병원장은 피난 정부가 있는 부산에 내려가 문교부 장관을 만나 학교인가 문제를 청원하고 돌아왔던 일은 아름다운 일화로 남아 광혜원 지역에 자녀교육의 절박성과 향학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설립의 당면 과제는 많은 재정과 학교 부지, 교사 신축 문제였다.
당시 중학교 설립 추진 위원장을 맡고 있던 유원호 병원장의 많은 재정적 후원과 적극적인 활동을 핀 피맺힌 집념은 헛되지 않아 1963년 4월 22일 드디어 상산 중학교가 설립인가 되었다.
또한 유원호 병원장은 학교 신축 부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길 수차례, 뜻을 같이 하는 지인 및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부지 기증 및 건축자재 기증으로 마침내 꿈은 이루어져 1995년 9월 1일 새 교사가 준공 되었다. 한편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보답하여 1966년 3월 28일 충청북도내 모든 중학교 종합고사에서 1위를 수상하여 새로 태어난 신생학교의 품격과 위상을 높여 1956년 4월 16일 광혜원 고등학교가 설립 인가 되는데 보탬이 되었다. 같은해 5월 9일 교명을 상산 중학교에서 광혜원 중학교로 변경하고 이날 광혜원 고등학교 입학식 겸 개교식을 가짐으로 넘치는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
학생들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시골 면 단위 지역에 중고등학교를 세운 것은 유래가 없었던 일로, 정부와 면민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한 당시 학교 설립 추진
위원장이신 유원호 병원장의 희생적 봉사정신, 후학들에게 교육의 문호를 열어준 갸륵한 집념은 영원히 본받아야 할 유산으로, 고 유영소 회장께서는 선친이신 유원호 병원장의 봉사정신을 이어 광혜원 고등학교에 매년 14명을 선별하여 매분기 4회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고 유영소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사업과 인재육성은 대를 이어 지속 될 것이다.